▲13일 오후 1시 30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혐오로 몰지말라'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13일 오후 1시 30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혐오로 몰지말라'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지난 11일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내놓은 입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시위를 두고 이스라엘 대사관이 “유대인 학살을 촉구하는 아랍어 구호가 등장했다”며 “증오를 표출하는 악의적인 시위”라고 주장했기 때문.

한국 시민들과 팔레스타인인, 여타 아랍계 이주민들로 이뤄진 시위대가 반유대주의와 유대인혐오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심지어 “반유대주의와 인종혐오를 넘어 IS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동조하는 시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며 시위대를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비교하기도 했다.

▲아랍어 통역사로 11일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석한 박이랑 노동자연대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아랍어 통역사로 11일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석한 박이랑 노동자연대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비판은 반유대주의 아냐...왜곡 중단해야

그러나 이는 한국 내 반이슬람 정서를 이용한 악의적인 왜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오후, 팔레스타인 저항 연대를 주도한 시민들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 대사관의 성명을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무차별한 살상을 규탄한 일이 어떻게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되냐는 것.

이들은 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와 동일시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스라엘이 수천년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학살해온 것이 모든 비극의 원천”이라 강조했다.

또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거짓 선동과 달리, 집회 참가자들은 유대인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끝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연대 기자이자 아랍어 통역사로서 11일 집회 통역을 맡은 박이랑 씨는 “이스라엘 대사관은 자국의 진실을 가리고자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계의 부채감을 비겁하게 활용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현존 최악의 식민주의 국가이자 인종 차별 국가라는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카이바르 야후드’가 뭐길래?...유대인 혐오와 무관

무엇보다 11일 집회에서 등장한 구호는 어떤 의미에서도 학살을 촉구한다고 보기 힘들다.

이스라엘 대사관이 “유대인 학살을 촉구하는 아랍어 구호”라 주장한 시위대 구호는 ‘카이바르 야후드(유대인들이여, 카이바르를 기억하라)’였다.

그러나 카이바르는 7세기 무함마드의 이슬람 세력과 유대인들 간의 전쟁이 있었던 중동지역의 오아시스로, 중세 초 비일비재했던 종교분쟁의 장소 중 한 곳이었다.

당시 무함마드 세력은 소규모 세력으로 유대인들이 점유하던 카이바르를 점령했고, 이를 계기로 유대인들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이 지역을 떠나거나, 재산을 내놓는 대가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그 후 무함마드 세력은 항복한 유대인들을 관대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하며 카이바르 전투를 마무리했다. 역사적으로도 학살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카이바르 야후드'라는 시위대의 구호는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승리를 염원하는 소박한 신앙적 구호에 가깝다.

실제로 ‘카이바르’는 가자지구 시민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일 때 노래 구절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회견 참가자들이 “이스라엘 대사관은 한국인들이 아랍어를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규탄하는 이유다.

한편 이스라엘의 무차별한 가자지구 공습이 7일째 이어지며 팔레스타인인 1,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6,6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 가운데, 가자지구엔 병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황.

전쟁이 장기화 되리라는 전망에 국제 사회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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