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때문에 유공자법 반대?
최근까지도 재심에서 무죄 확정
민주화 세력 탄압의 도구 '국보법'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시대 정치, 색깔, 이념, 종북공세 중단 및 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해외동포' 기자회견에서 구시대 정치 중단 및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시스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시대 정치, 색깔, 이념, 종북공세 중단 및 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해외동포' 기자회견에서 구시대 정치 중단 및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시스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세력을 괴롭히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여당의 구호는 ‘운동권 청산’이었다. 그 결과 총선 완패를 당했음에도 끝까지 민주화 세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국가보안법을 핑계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반대한다.

여당은 박종철 열사를 민주화 열사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에는 반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유공자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보법은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였다. 최근까지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 합당한 지적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박종철 열사의 모친, 정차순 여사가 숨을 거뒀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평생을 민주화에 바친 그의 생전 소원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이었다.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아직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장례식장을 찾아 정 여사의 별세를 추모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논평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전국에 울려 퍼진 국민의 함성과 고 박종철 열사의 숭고한 희생은 우리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등 참석 의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등 참석 의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그러나 국민의힘은 20여 년이 넘게 논의된 이 법안이 수면 위로 오를 때마다 반대 의사를 강력히 피력했다. 반대의 근거는 유공자 선별 기준이 명확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보훈부 역시 반대 입장을 전하며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시,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전했다.

이희완 보훈부 차관은 25일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 법안에 따라 민주유공자 등록이 당연히 배제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민주유공자로 등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안에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법안에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을 적용 대상자로 결정할 때는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판단이다.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민주화 세력을 속칭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국가보안법 혐의를 씌웠다. ‘오송회 사건’, ‘이장형, 정상금 간첩 사건’, ‘강희철, 김양기 간첩 사건’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가 길게는 20여 년 뒤에 무죄로 판결 난 사건이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였던 부림사건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산 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있다. 1987년 신군부에 맞서 헌법을 새로 만들자며 결성한 제헌의회(CA) 그룹에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대학생이 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12월 16일 판결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의 최씨 체포는 불법인 점, 자백을 강요받는 상황이었던 점 등을 고려해 최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신군부 당시 국가보안법 이처럼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탄압의 무기로 사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아직도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민주유공자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80년대에 이어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세력을 괴롭히고 있는 거다. 그 칼을 휘두르고 있는 세력은 신군부에서 맥을 이어온 당이라는 점은 기시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